제우스의손 (2023-11-04 오후 2:11:13)
프로메테우스는 신과 인간 사이에서 중재자의 역할을 수행했으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독특한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그는 한 마리의 소를 죽여 두 부분으로 나누었는데, 이는 두 개의 제물로 구성된 복잡한 퍼즐의 시작이었습니다. 한 부분에는 고기를 숨기고 그 위에 가죽으로 덮어 그것이 고기임을 숨겼습니다. 반대쪽에는 뼈를 놓고 그 위에 기름을 붓는 방식으로 뼈가 더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조작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에게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제우스는 어떤 부분을 인간이 신에게 제물로 바칠지 결정하는 권한을 얻었습니다. 제우스는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기름에 덮인 뼈 부분을 선택하였고, 이 결과로 인간들은 신들에게 제물로 뼈를 바치게 되어, 고기를 자신들이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간에게 불을 주었고, 인간이 신들을 섬기는 방법을 정하게 함으로써 인간에게 이익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행동은 제우스의 불만을 샀고, 이로 인해 프로메테우스는 결국 제우스의 벌을 받게 됐습니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주는 행위는, 그저 물리적인 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이성과 지혜, 즉 '빛'을 주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는 인간이 이성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 그로 인해 자신의 삶을 주도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들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의 오만함을 나타내는 행위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이 불을 통해 이성과 지혜를 얻었지만, 그 대가로 신의 분노를 사게 되었고, 이로 인해 다양한 시련과 고난을 겪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기분이나 운명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신을 자신들의 행동과 감정을 지배하는 존재로 여겼습니다. 그들에게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안정감을 주는 행위였고, 이는 일상 생활에서 생기는 불안함을 해소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들은 신의 의지를 받아들이고, 그 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인생의 불안함을 해소하는 중요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의 행동은 이러한 통념에 도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행동은 인간이 신의 의지에 완전히 종속되어 있지 않음을 강력하게 보여주었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위해 제우스를 속이고, 인간에게 불을 주어 신과 인간 사이의 균형을 직접적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는 인간에게 이성과 지혜를 주었고, 이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주도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습니다. 이는 인간이 신의 의지에 완전히 의존하지 않아도 됨을 보여주는 강력한 메시지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은 제우스의 불만을 샀고, 프로메테우스는 결국 제우스의 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그리스 신화에서 신과 인간, 그리고 그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제공합니다. 인간은 이성과 지혜를 통해 자신의 삶을 주도할 수 있지만, 그러한 능력은 신의 분노를 사올 수 있으며, 따라서 인간은 그에 따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아야 함을 강조하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결국, 그리스 신화는 인간의 존재와 신과의 관계, 그리고 인간의 욕망과 그로 인한 결과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합니다. 이는 그리스 신화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이며, 우리가 오늘날에도 그리스 신화를 연구하고 이해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에게 판도라를 선물로 보내는데요. 이때 에피메테우스는 이미 프로메테우스로부터 "제우스로부터 온 선물은 절대로 받아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경고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판도라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그녀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상자를 손에 들고 인간들 사이로 들어오게 되는데, 이 상자 속에는 모든 악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것은 인간들이 처음으로 악을 경험하게 된 순간이자, 제우스가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복수를 시작한 첫 번째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제우스가 선물한 호기심 때문에, 판도라는 상자를 열게 되고, 그 결과로 세상은 모든 종류의 고통과 재앙이 넘쳐나게 됩니다. 이는 인간들에게 처음으로 고난을 가르치는 순간이며, 이것이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제우스의 첫 번째 복수였습니다. 다음으로,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카프카스산에 묶어두고, 매일 독수리가 그의 간을 찢어먹게 합니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불멸의 신으로서 매일 밤마다 간이 다시 자라나게 됩니다. 이것은 프로메테우스가 겪는 끝없는 고통으로서, 제우스의 두 번째 복수였습니다. 이렇게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와 인간에게 복수를 하면서, 그 과정에서 그는 인간의 존재와 그들이 겪는 고통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얻게 됩니다. 이는 그리스 신화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주제 중 하나로, 신들이 인간의 삶과 고통을 이해하게 되고, 그로 인해 인간들에게 더 나은 존재가 되려는 노력을 보여줍니다. 제우스는 상자에 각종 해로운 것들을 넣어 그것을 판도라와 함께 에피메테우스에게 보냅니다. 그러나 에피메테우스는 이미 프로메테우스로부터 제우스가 보낸 선물을 받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판도라의 매력에 이끌려 형의 경고를 잊고 결국 그녀와 결혼하게 됩니다. 잘 알려진 대로, 결혼 생활 도중 판도라는 호기심에 이끌려 상자를 엽니다. 그 순간, 상자 안에서 질병, 고통, 슬픔, 원한 등 인간이 살면서 느낄 수 있는 모든 악이 튀어나옵니다. 놀란 판도라는 급히 상자 뚜껑을 닫지만, 그 안에는 한 가지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희망이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면서도 희망에 의지해 생활을 이어가게 됩니다. 이 희망이 진정한 희망인지, 아니면 다른 종류의 재앙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고통을 지켜보는 프로메테우스의 마음은 찢어집니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아직 제우스의 복수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요. 제우스는 강한 쇠사슬로 프로메테우스를 카프카스산에 묶어두고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개는 형벌을 내립니다. 불멸의 신인 프로메테우스는 매일 간이 재생되어 이 고통이 반복됩니다. 그런데 제우스가 프로메테우스에게 이처럼 잔인한 형벌을 내린 이유는 단순히 인간에게 불을 전해주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이유는 제우스의 존립 문제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언젠가 제우스도 그의 할아버지 우라노스와 아버지 크로노스처럼 자신의 자식에게 멸망의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에게 그 자식을 낳을 여자가 누구인지 물었습니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운명을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며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사실 프로메테우스는 동생이나 자식들에게 앞으로의 밝지 않은 운명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프로메테우스의 고통은 그의 저항과 제우스의 독재에 대한 대립 구조를 보여 주는데, 그 이야기는 그리스 비극 작가 아이스퀼로스의 작품 '망쳐진 프로메테우스'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괴로움을 견디며 지낸 긴 세월 끝에 프로메테우스는 어떤 이유로 인해 해방되게 되는데, 이 순간은 그리스 신화 전반부의 마침표이자 후반부의 시작을 알리는 커다란 전환점이 됩니다. 제우스는 자신이 만든 판도라의 상자로 인해 인간들의 삶이 힘들어진 것에 불만을 품고, 그들이 제사를 소홀히 한다며 분노합니다. 그래서 그는 인간 세상에 내려와 리카온에게 인간을 쓸어버리기로 결심합니다. 그의 방법은 홍수를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포세이돈과 함께 홍수를 일으켜 세상을 뒤덮었지만, 높이 솟은 파르나소스 산의 꼭대기만은 잠기지 않았습니다. 그 곳에는 프로메테우스의 아들 데우칼리온과 에피메테우스와 판도라의 딸 피라, 즉 사촌지간이자 부부인 두 사람이 생존했습니다. 이들이 살아남은 것 역시 프로메테우스가 미래를 예지하고 미리 준비시킨 결과였습니다. 이 둘을 보고 제우스가 분노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평소 신들을 성실하게 섬겼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제우스는 두 사람을 위해 지구상에서 생명이 모두 없어진 것을 확인한 후 홍수를 그치게 합니다. 데우칼리온과 피라는 파르나소스 산에서 내려와 눈앞에 보이는 테미스의 신전에서 기도를 드립니다. 그들은 테미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면서도, 세상이 진흙탕이 되어 사람이 없어 외롭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호소합니다. 그러자 테미스의 음성이 들려오며, "옷을 벗어 베일을 쓰고 어머니의 뼈를 등에 지고 이곳을 떠나라"고 말합니다. 이 말에 두 사람은 놀라며 이해할 수 없는 요구에 당황합니다. 데우칼리온과 피라는 테미스의 말의 은유적인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어머니'라는 말은 대지를 가리키며, '어머니의 뼈'는 돌맹이를 의미함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둘은 신의 말대로 돌맹이를 뒤로 던지며 신전을 떠나게 됩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돌맹이들이 하나하나 인간의 형상으로 변해갑니다. 그렇게 인류가 다시 탄생하게 되고, 이후 인간들은 신을 향한 존경과 경의를 소홀히 하지 않게 됩니다. 이는 신을 중요시하는 그리스인들의 인식이 반영된 결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홍수에 의한 세상의 멸망과 재생은 성경을 비롯해 수메르 신화, 중국 신화 등 여러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내용입니다. 이는 대형 홍수나 지진 같은 자연재해가 인류의 삶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경험에서 나왔을 것입니다. 또한 이는 인류의 공통적인 심리를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즉, 혼란스러운 세상이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 즉 인류의 멸망 버튼을 누르고 싶은 욕망, 그리고 죄의식에 기반한 자기 처벌의 욕구가 담겨 있는 것일 겁니다. 특히 재앙이 불이나 지진이 아니라 홍수로 일어나야 하는 이유는 원초적인 물 속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은 정화의 바람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